닥터스 씽킹

의사가 병을 진단할 때 어떤식으로 사고하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의사의 병 진단과 프로그래밍의 디버깅이 비슷한 요소가 많아 보여서 읽게 되었고, 실제로도 그렇다.

의사의 심리 상태가 진단에 어떻게 방해가 되는지에 대해서도 다루며, 그 심리 상태를 환자와의 상호 관계를 통해 어떻게 개선해 나갈지 등에 대해서도 논의 한다.

의사의 심리에 영향을 미치는 큰 요소는 돈이다. 제약회사와 의사의 관계가 만들어 내는 진단시 맹점에 대해서도 다룬다.

“오슬러 박사의 기본적인 주장은 환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그 속에 진단이 들어있다는 겁니다.” p.29
“환자의 이야기에서 등을 돌리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진정한 의사가 아닙니다.” p.29
통상적 개방형의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의사가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 화자의 답변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이 로터 교수의 설명이다. p.30
“가야 할 방향이 확실한 경우에는 폐쇄형 질문이 가장 효과적이다. 하지만 진단에 확신이 없을 경우에는 폐쇄형 질문이 오히려 악영향을 끼친다.” …
개방형 질문의 가장 큰 장점은 질문을 통해 의사들이 새로운 정보를 습득할 기회를 최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방형 질문에 성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라고 로터 교수는 웅변조로 물었다. “자신이 하려는 말을 의사가 진정으로 듣고 싶어한다고 환자가 느낄 수 있어야 한다.” p.31
“사람들은 흔히 극단적인 두 경우를 떠올리곤 한다. 자폐증적 임상 태도를 지닌 뛰어난 외과의사와 뛰어난 능력은 없지만 친절한 일반 내과의. 그러나 좋은 것들은 함께 간다. 좋은 의사는 보통 이 두 가지를 모두 갖9ᅟᅮᆯ 것을 요구받는다. 좋은 의사는 종합 선물 세트다.” p.33
“의사는 주로 말을 하는 사람이며, 소통의 문제는 양질의 의료 행위와 결코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진단을 내리려면 정보가 필요하고, 정보를 얻는 최고의 방법은 바로 환자와 친밀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의사의 경쟁력은 소통의 기술과 따로 분리해 설명할 수 없다. 이는 절충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p.33
수련의 시절 지식의 양뿐만 아니라 임상에서의 탁월한 판단력으로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명성을 누리고 있던 한 심장학 전문의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수십 년 동안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모두 기록한 일지를 늘 지니고 다녔는데, 특히 어려운 사례를 만났을 때 그 실수 일람표를 뒤지곤 했다. p.36
만일 최고의 임상의가 되고 싶다면 스스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분석하고, 늘 가까이 두고 참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p.36
지각이 있는 의사들은 주어진 틀을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심각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p.37
환자에게 심각한 해를 까친 오진 사례들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무려 80퍼센트 정도의 오진 사례가 앤의 경우처럼 환자를 좁은 틀 안에 가두고, 자신의 고정관념에 벗어나는 정보들을 무시한, 일련의 인지적 오류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p.39
부정확한 진단과 치료에서 이러한 기술적 실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대부분의 오류는 생각의 실수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의 오류를 일으키는 일부 요인은 우리 내면의 감정, 선뜻 인정하기 힘들뿐더러 제대로 인식조차 하기 힘든 우리의 감정이다. p.61
'대표성 오류(representativeness error)라고 불린다. 이는 하나의 원형에 사고가 이끌려 그 원형에 반하는 가능성들을 고려하지 못하고, 결국 증상의 원인을 잘못 짚으면서 발생하는 오류다.
의사들이 더욱 빈번하게 저지르는 또다른 실수는, 환자가 자신들의 부정적인 선입견에 부합할 때 범하게 되는 이른바 '귀인 오류(attribution error)'라는 것이다. p.69
“귀인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고, 또 환자를 지겨운 알콜중독자로 치부하며 서둘러 손을 털어버리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했을 뿐입니다.” p.71
감정은 환자의 영혼에 눈뜨게 하지만, 환자의 문제에 눈멀게 할 위험이 있다. p.83
환자와 환자 가족들이 의사가 치료 과정에서 패턴 인식에 의존하고, 판단을 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전형에 의지한다는 사실을 항상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 p.84
엘렌은 상대를 무장해제시키는 유머 감각을 바탕으로, 자신이 어떤 사회적 전형에 들어맞는 사람인지를 알고 있으며 그 전형성 때문에 의사들이 자신의 호소를 충분히 고민하지 않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p.86
“선생님께서 얼마나 마음을 써주시고 계시는지 정말 깊이 감사드려요. 또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해도 꼭 필요하기 때문에 취하시는 조치일 거라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p.87
환자를 볼 때마다 수련의 시절에 배운 ABC 기본 원칙을 되뇐다고 했다. → 개발자도 디버깅 원칙 같은게 있으면 좋을듯. p.93
전문의들이 곧잘 “가끔 이런 경우가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는 자신만만하고 오랜 경험에 기초한 말로, 더 이상 알아보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로 들린다. 그러나 그런 말을 답을 찾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인 후, 지속적으로 환자를 모니터링한 끝에 나와야 마땅하다. 만일 대수롭지 않게 내뱉는다면, 이는 안심이 되는 정보로 들리기는 커녕 걱정스러운 무지를 드러낼 뿐이다.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하지 말라는 소리기 때문이다. p.95
“그 누구도, 어떤 의사나 환자도 '가끔 이런 경우가 있다'는 말을 중대한 사고에 대한 최초의 답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혹시 그런 말을 하는 의사가 있다면 문제를 해결하거나 문제가 사라질 때까지 좀더 지켜보자고 해야합니다.” p.96
'가용성 오류'란 관련된 예들이 얼마나 쉽게 떠오르는가에 따라 어떤 일의 변도나 확률을 판단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알터 박사가 무증상 폐렴이라는 진단을 쉽게 내릴 수 있었던 까닭은 지난 몇 주간 그와 유사한 수많은 감염 사례를 보아왔기 때문이다. p.98
선별적 인식을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부른다. 정보를 선택적으로 수용하거나 무시함으로써 자신의 신념을 확증하려는 오류. '정박(anchoring)'은 일종의 편의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닺을 내렸다는 확신에 차서 다른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고 오직 한 가지 가능성만을 신속하고도 단호하게 잡는 것이다. p.99
길을 가다 발을 헛디딘 뒤로 발목이 아프다며 응급실을 찾아온 한 노인이 생각난다. 그는 뼈가 부러지지 않았는지 확인만 하고 진통제를 달라고 했다. 모두가 그의 발목에만 집중했다. 애초에 왜 발을 헛디디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참 뒤에야 우리는 그가 빈혈증 때문에 힘이 없어 넘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빈혈의 원인은 결장암이었다. p.102
“우리는 어떤 일이 주어지든 깊이 고민하지 않고 척척 해치우기를 바랍니다. 마치 카우보이처럼 말이죠.” 마치 신속하고 단호해야 생명을 구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알터 박사의 표현을 그대로 쓰자면, 어떤 환자를 만나든 정신없이 돌아가고 때로는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는 주변 환경에 정신을 빼앗기거나 위축되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생각과 행동의 속도를 늦추면서 '신중한 여유'를 가지고 진료한다. p.111
일반인들이 의사의 정신 집중을 도울 만한 또다른 방법은 이렇게 묻는 것이다. 현재 증상이 나타나는 지점과 어떤 신체 부위들이 인접해 있습니까? p.113
우리가 의사에게 하는 말의 내용과 방식이 의사의 생각을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라. 그러한 영향력은 질문에 대답할 때뿐만 아니라 질문을 던질 때도 발휘된다. p.113
“선생님은 늘 깨어 있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십니까?” “하루 진료를 시작하기 전에 늘 마음의 준비를 해요.” p.120
(의사)선생의 고된 일과와 수면 부족 이야기를 듣다 보니… “호출음이 들리면 바로 화부터 났어요. 정말 심각한 문제는 환자를 염려하는 마음이 사라졌다는 거였어요” p.121
소아과나 그 밖의 1차진료 기관들, 일반개업의나 내과의 경우는 환자 한 명을 두고 한 시간 동안 씨름하며 여러 가지 복잡한 증상의 원인을 밝히거나, 혹은 어떤 질환이나 치료에 따른 정신적 부작용을 면밀히 조사한다 해도 그들의 보험 급여는 미미하다. p.129
그의 눈길은 시계가 아니라 언제나 우리의 눈을 향해 있다. p.131
약 처방을 제대로 따르지 못한 이유는 불순응의 문제가 아니라 약병 라벨을 읽지 못했기 때문이니까요.
빅비 선생은 이처럼 맥락의 고려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병원의 인턴들과 레지던트들에게 전해주려고 노력한다. p.137
언어에 대한 민감성은 모든 환자와의 관계에서 반드시 의식해야 할 문제이며 … p.140
의사에게는 대수롭지 않게 보일 수 있는 것이 환자에게는 비극으로 다가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이었다. p.140
그런식으로 컴퓨터 기술을 이용하여 '효율성'만 진작시키다 보면 의사와 환자 사이의 틈은 점점 벌어지기만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의사의 정신이 온통 템플릿 빈칸을 채우는 일에만 쏠려 인식의 오류를 범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개방형 질문을 시도할 가능성도 줄어들고, 템플릿에 들어맞지 않는 데이터는 쉽게 포기하게 될 것이다. p.146
전국의 모든 수련병원들은 쉬라 스타인의 사례가 논의된 콘퍼런스와 같은 토론의 장을 마련한다. 실습생이나 인턴을 받지 않는 개인병원들 역시 비슷한 토론회를 열어 수석 스태프들이 함께 모여 흥미롭고 특이한 임상 사례들을 논의한다. p.182
“오리처럼 생기고 오리처럼 걷고 오리처럼 우는 건 무엇일까? 답은 오리.” 그러나 답이 늘 오리인 것은 아니다.
의사들은 개별 환자의 증상과 소견을 자신의 마음속 템플릿 또는 임상적 원형에 맞추려는 경향을 경계해야 한다. p.183
'진단 관성(diagnosis momentum)' 이라는 인지적 오류도 범했다. 일단 머릿속에 한 가지 진단이 고정되면 증거가 아무리 불완전해도(쉬라의 경우 증거의 일관성이 부족했다. T세포 수가 증가했으며,, 여가의 경우 SCID 사례가 드물었다) 동료나 후배 의사들에게까지 그 최초의 진단이 전달된다는 것이다. p.185
진단 관성은 마치 산에서 굴러 떨어지는 바위 처럼 점점 강한 힘이 불어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부숴버린다. .. 임상 퍼즐의 조각들이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았을 때, 나는 맞지 않는 일부 조각을 옆으로 밀쳐놓았다. 결함이 있는 줄 알면서도 진단을 가정하고, 익숙한 자료를 위해 불분명한 상태를 분명한 원형에 꿰맞추려고 했다. p.186
의사들의 시술 능력에 대한 연구 결과들은 손을 얼마나 잘 쓰냐 하는 것보다는 '시공간 농력', 즉 머릿속으로 혈관이나 조직들의 윤곽을 그리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p.205
모든 모든 편견과 선입견을 거부한다. 가장 핵심이 되는 임상적 특징들을 찾아내(패턴 인지) 자신의 방식대로 상황을 재구성한다. p.210
논리가 아무리 완벽해 보여도 결국은 인간인 내가 만들어낸 논리라는 사실을 스스로 분명히 해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또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그 일에도 한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p.21p
의사들 역시 불확실성 속에서 행동할 때 특정한 심리적 반응을 보인다. 그중 지나친 자신감을 꼽을 수 있다. 사람들은 그동안 대체로 내 생각이 옳았으니 이번에도 옳겠지, 하고 자신한다. 또 부정적인 정보보다는 긍정적인 정보만 보려고 한다. 긍정적인 정보는 긍정적인 결과를 암시하기 때문에 심정적으로 더 끌린다. p.214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또다른 방어기제는 의과대학 시절부터 시작되는 순응과 인습의 문화다. 이는 도제 과정의 고유한 특징이다. p.219
확증 편향, 즉 춰ᄌᅠᆼ 진단을 뒷받침하는 데이터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그에 반하는 데이터는 최소화하려는 경향이 뚜렸했다. p.219
역설적이게도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의사의 치료 효율성이 향상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고려가 의사의 솔직함, 환자의 문제에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의지, 우회나 절반의 진실이나 거짓에 의존하기보다는 현실에 최선을 다하려는 의지를 낳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첫 번째 전략이 실패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진료를 바꿔 다시 지속적인 시도를 이어가기가 쉬워진다. 불확실성은 때때로 성공의 필수 조건이 된다. p.221
통념에 따르면 외과의사는 '뛰어난 손'을 가져야 하고, 외과의사로 성공하려면 손재주가 좋아야 한다고 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능숙한 의사결정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손재주가 전혀 없다면 수술은 좀 곤란하겠지만요.” 더불어 눈과 손의 협응력도 도움이 될 것이다. p.240
외과의사들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기술이나 각자 선호하는 바느질법 또는 그들이 특정 상황에서 선호하는 특정 기구에 있는게 아니라, 바로 환자의 문제를 개념화하고 수술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을 파악하는 능력이라고 라이트 박사는 강조했다. 외과의사에게는 손보다 머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p.241
'사명감 오류(commission bias)'를 보여주었다. 이는 손을 놓지 못하고 무엇이든 하려는 경향성이다. 이러한 오류는 자신감이 지나치고 자아가 부풀려진 의사들이 저지르기 쉽지만, 절박한 마음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한 욕구에 넘어갈 때도 범하기 쉽다. p.241
“자꾸 뭔가를 하려들지 말고 가만히 지켜보라.” …
이 말은 진단에 자신 없어 하는 나를 보고 나의 멘토 중 한 사람인 린다 루이스 박사가 해준 조언이다.
… 루이스 박사는 의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이는 분명 사람들의 기대는 물론 의사 자신의 기대에도 어긋나는 일일거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최선의 방법일 때도 있다. p.242
또다른 인식의 오류를 범했는데, 이는 '탐색의 만족(satisfaction of search)' 또는 '탐색 만족화(search satisficing)'로 불린다. 그것은 일단 어떤 한 가지 단서를 찾아내면 더 이상의 탐색 노력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성이다. p.242
“일단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울지는 몰라도, 전부를 발견하지 못하면 결국 차선에 불과하다” p.243
'수직적 사고의 오류(vertical line failure)'도 피해갔다. 다시 말해 우물안 개구리 오류라고 할까?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라”는 표현이 진부해지긴 했으나, 여전히 통념을 깨뜨리는 '수평적 사고'의 중요성을 암시한다. … 데이터와 임상 소견들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확실한 것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창조력과 상상력이다. p.244
내분비 및 신진대사 전문의인 카렌 델가도 박사는 수평적 사고를 통해 창조력과 상상력이 요구되는 진단을 내리는 의사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어떻게?
인턴 시절 마인드 게임을 즐긴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는 환자를 진찰할 때면 설사 진단이 분명하고 확실해 보인다고 해도 잠깐 멈추고 속으로 되묻는다. 다른 어떤 가능성이 또 있을 수 있을까? … 따로는 머릿속에 데이터를 재정렬한 뒤, 가능한 또다른 그림, 환자의 증세를 설명해 줄 수 있는 다른 패턴을 만들어본다. 그 패턴이 맞아떨어지면 더 깊이 탐색한다. 결코 처음부터 안주하려 들지 않는다. 많은 경우 그러한 탐색은 성과 없이 끝나고, 처음의 명백한 진단이 정확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가끔씩은 이러한 수직적 사고에서의 이탈, 즉 모든 게 맞아떨어지는 듯한 우물에서의 탈출이 최초의 진단을 뒤집는데, 환자에게 여러 문제가 겹쳐 있어서 여러 진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해 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는 유서 깊은 오컴의 면도날 원칙, 즉 모든 데이터를 설명할 수 있는 한 가지 원인을 찾으라는 원칙을 거스른다. p.244
신뢰감은 의사가 환자에게 솔직한 태도로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 확실한 소견과 아직 불확실한 소견, 원인을 밝힐 수 있는 증상들과 아직 원인을 찾지 못한 증상들을 이야기할 때 오히려 강화된다는 것이다. p.245
“완벽은 최선의 적입니다. 수술에선 그 무엇도 완벽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게 타협이죠. 수술 후 80퍼센트 정상 회복이라면, 상당히 흡족하다고 봐야죠.” p.246
“생물학이나 의학도 쉽고 분명한 언어로 설명하면 일반인이 이해하지 못할 만큼 어려운 건 없다.” p.248
환자들은 질문을 던짐으로써 의사들의 생각을 도울 수 있다. 의사가 수술 후 발생 가능한 합병증을 언급하면 해당 합병증의 발생 빈도를 물어보라. 시술 후의 통증과 불편감을 이야기하는 의사에게는 그 통증이 노보케인(치과용 국부마취제-옮긴이) 마취로 치아를 뺄 때의 고통과 비교해 어떤지 물어보라. 특정 수술을 제안하는 의사에게는 왜 그 수술을 제안하는지, 그 수술로 무엇을 발견할 것인지, 그 발견 가능성은 어느 정도이며, 더욱 중요하게는 그 발견이 어떤 차이를 만들어낼지를 물어보라. p.249
“관찰자간 가변성(interobserver variability)” : 여러 명이 하나를 보고서 서로 다른 응답을 하는 의견 불일치
“관찰자내 가변성(intraobserver variability)” : 한 명이 다음날 다시 보고서 다른 응답을 하는 경우 p.256
연구 결과를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필름을 보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환자에게 해를 줄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약 38초가 지나면서 많은 판독자들이 “필름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기” 시작했다. 즉, 허위양성 판독을 하고 정상 조직을 비정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p.258
각 사람이 하루에 4~5건의 엑스레이를 판독하되, 그 각각의 엑스레이에 대해 다른 한 사람이 다시 독자적인 판독을 시행한다. 그런 다음 이 두 판독 결과를 비교한다. 어떤 경우는 차이가 미미하지만, 그 차이가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결과는 매일매일 전체 그룹의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고, 전체 팀은 물론 각 사람도 항상 그 내용을 모니터링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실수는 물론 다른 사람의 실수를 통해서도 교훈을 얻지요.” p.264 페어 프로그래밍 혹은 코드 리뷰가 생각났음
“한 영상에서 같은 것을 보더라도 본 내용을 어떤 식으로 묘사하고 어떤 용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전달되는 뉘앙스와 의미에서 차이가 생기죠.” p.275
품질 보증 콘퍼런스는 방사선과 전문들이 모여 자신들의 판단을 검토하고 기술을 향상시켜 미래의 실수에 대비하는 회의다. p.277
기술의 힘, 특히 컴퓨터 기술의 힘이 초기 진단에 대한 전문의의 자신감을 얼마나 뒤흔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기계가 지각과 사고의 불완전함에 대한 완벽한 해답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p.281
일부 제약 회사들이 건강과 질병에 대한 의사들의 생각을 바꾸려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번 경우는 노인들에게 나타나는 정상적인 변화를 하나의 병으로 만들려는 시도였다. p.293
즉, 인체의 정상적인 변화와 문제까지 치료함으로써 질병을 만들어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일부 제약회사들은 자연스러운 노화 과정을 또 하나의 질환으로 만들려고 한다. 협소한 표준에서 벗어나는 성격과 기질적 특징들을 치료가 필요한 정신 질환으로 규정하려는 경우도 있다. p.298
한 사람의 개인적 욕망이나 제약회사의 마케팅에 현혹되어 내려진 결론에 휩쓸리지 말고 우선은 냉정을 유지하면서 보다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평가를 기다리는 일 역시 중요하다. p.303
그들이 객관성에 근거해 말하지 않고 믿음에 근거해 말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요즘 그런 의사를 찾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다. p.307
발표된 “누구를 만나느냐가 중요하다(Who you see is what you get)라는 연구 논문에 따르면, 각 전문가 그룹은 환자 평가시 자기 분야의 진단 도구를 선호한다고 한다. p.318
아주 사소한 선물조차도 의사의 판단에 교묘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선물공세의 심리학에 따르면 누구든 선물을 받게 되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답례의 의무를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항상 그렇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 답례가 환자의 부담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p.325
설명했듯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각종 분류법들과 알고리듬이 자신의 생각을 대신해 주기를 바라는 젊은 의사들을 만나는 건 일상사였다. .. 그러한 진부한 분류 기준들이 널리 이용되면서 의사들이 포괄적 분석에만 익숙해져 환자 개개인의 특징은 간과하게 되었다고 했다. p.336
“전 환자분들께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해 도와드리겠다고 말씀드립니다. 그 말은 실패를 각오하겠다는 얘기이기도 하지요.” p.339
“물론 사람들이 왜 그렇게 부작용에 집착하는지 이해도 갑니다. 하지만 그건 위험 대비 효과 비율을 왜곡하죠”
화학요법에서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니머 선생은 말했다. 사람들은 화학요법의 위험을 크게 우려하지만, 그런 위협은 공격적인 악성 종양에 미치는 잠재적 효과에 비하면 아주 미미한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환자들에게 당장 코앞에 닥친 문제부터 해결하자고 말한다. p.346
사람은 누구나 불확실성에 직면하는 순간 본능적으로 확실성에 매달리려 한다. p.347
“여러 가지 집중치래법에 대해 얘기하는데, 그분은 자꾸만 얘기를 돌려서 롱아일랜드로 오리사냥을 떠난 일이며 집에서 부인을 돌볼 사람이 자기밖에 없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리베라가 니머 선생에게 보낸 암묵적 메시지는, 자신이 계속 왜래 환자로 치료받으면서 부인을 돌볼 수 있는 치료법을 찾다달라는 것이었다. p.349
“전 구분의 자제분들에게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를 받았습니다. 제가 왜 그분을 병원에 입원시켜 집중치료를 받게 하지 않았는지, 그 아홉 달이 그들 부모님께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는지 이해한 거지요.” p.351
날카롭고 공격적인 성향의 사람들은 강하게 밀어붙이는 의사들 쪽으로 기운다. 그들은 그러한 공격성이 성공으로 이어질 거라고 믿는다. 반면 테플러 선생은 말을 부드럽게 하고 주도면밀하여 그러한 성격의 사람들이 연대감을 느낄 확률이 높다. p.353
“제가 다양한 유형의 질환을 가진 환자분들을 진료하는 일을 좋아하긴 하지만, 만일 환자가 다른 곳에서 더 나은 진료를 받을 거라는 판단이 서면 다른 의사에게 보낼겁니다.” 이는 자신이 비록 전문가이긴 하나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환자에게 무엇인 최선인가를 생각하는 진정한 의사의 또다른 모습이다. p.354
말기암 환자들은 때로 '매질을 당한다.' 이는 아무런 소득 없이 계속 되풀이되는 항암 치료를 일컫는 말. p.355
“제 판단에 잘못된 것으로 보이는 요구를 환자가 해오면 전 강경하게 나갑니다. 그건 틀렸다고 말합니다.” 테플러 선생은 만일 환자의 요구가 심각한 해를 일으킬 것 같으면 환자의 비위를 맞추려 하지 않는다. p.355
자신의 임상적 판단에 자신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는 때로 자신도 틀릴 수 있음을, 혹은 결과를 정확히 예견할 수 없음을 인정한다. p.359
“당연히 사람들은 홈런을 바랍니다. 하지만 종양학자에서 우리가 이룰 수 있는 건 그에 못 미칠 때가 많지요. 홈런을 좇다가 생길 수 있는 위험은 삼진아웃을 당할 수 있다는 거죠.” p.359
자신의 아내를 치료했으나 통계 수치와 프로토콜 외에는 어떤 방법도 고료하지 않은 종양학 전문의와 정보요원 친구를 버린 종양학 전문의 두 의사는 실표의 두려움, 어쩌면 죽음의 두려움에 늘 시달리며 사는 사람들이었다. p.362
하지만 난 유난히 합리성을 강조하는 태고, 모든 수치가 확보된 뒤에야 행동에 착수하는 태도는 사실 암 환자 치료에 있어서는 비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해. 그런 사람은 창조적인 시도를 외면하고 최전선에 나서기를 거부하지. p.363
합리로 보이는 것도 사실 환자의 요구와 목적에 적용하면 비합리가 될 수 있고, 환자의 필요보다는 의사의 심리를 반영한 것일지도 모른다. p.363
정확한 진단에서 멀어지는 길은 첫째, 잘못된 의사소통이다. 따라서 생각이 있는 의사들은 언어의 문제로 돌아간다. 가령 “지금 제게 처음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하시고 다시 한 번 더 들리주시겠습니까?” p.365
“문제가 한 가지 이상일 수 있는가?” 학교에서도 전공의 시절에도 우리는 인색한 사고를 하라고, 오컴의 면도날 법칙을 적용하라고, 환자의 많은 불평에서 한 가지 문제를 찾아내라고 배웠다. 보통 이러한 가르침은 정확한 접근법이 되곤 한다. 그러나 이 역시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니다. 문제가 한 가지가 아닐 수 있다는 의문은, 모든 의사들이 빠지기 쉬운 가장 일반적인 인식의 함정, 즉 '탐색 몬작'의 오류를 피하게 하는 또다른 안전책이다. p.368
때때로 사고의 막다른 끝에 이르러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해지곤 한다. 이는 아마 인식의 오류를 범하고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p.369
그러나 이제 나는 환자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환자분께서 말씀하시는 문제를 전 잘 모르겠습니다.” 잘 모르기 때문에 이제 당신을 다른 병원으로, 힘겨운 도전을 기꺼워하는 독립적 사고능력을 갖춘 의사에게 보내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p.369
“여전히 몸이 안 좋네요. 증상이 그대로예요”라고 말하는 환자에게 “아무 이상 없습니다”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이제 나는 안다. “아무 이상 없습니다”라는 말은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위험한 발언이다. 첫째 모든 의사는 실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말이고, 둘째는 우리의 정신과 육체를 분리시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때로 문제의 원인이 정신에 있을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결론은 환자의 고통을 불러왔읐지 모르는 육체적 원인을 심도 있게 그리고 충분히 탐색한 뒤에 내려야 한다. p. 369
우리의 몸을 압도하는 정신의 힘, 정신신체증의 위력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p.372
치료법에 대해, 그 치료법을 쓰는 이유와 구체적인 내용과 관련해 환자와 의사 사이에 분명한 상호이해가 존재해야 한다. 또한 환자의 사회적 조건에 관심을 두는 의사라면 치료가 효과를 발휘하지 않을 때 비의학적 원인을 고려할 수 있다. p.373
나는 내 생각의 질을 높여줄 또다른 중요한 파트너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 파트너는 정곡을 찌르는 결정적 질문 몇가지를 덤짐으로써, 오진을 유발하는 수많은 인식의 함정들로부터 나를 보호해 줄 것이다. 그 파트너는 불완전한 인간이 내리는 의사결정의 순간 나와 함께한다. 그 파트너는 바로 내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있는지, 내가 어떤 식으로 사고하는지 알고자 하는 나의 환자이며, 혹은 환자의 가족이거나 친구들이다. p.375